12월 7일...
산악회에 송년회가 있어 근교산으로 산행지를 정합니다
하동 금오산으로
이순신장군의 마지막해전을 치른 곳...
노량해전의 격전지이지요
전국적으로 금오산이 제법있지요
구미에 금오산, 남해 금오산, 그리고 하동의 금오산
남해의 금오산도 조망이 빼어나지만
이곳 하동 금오산도 다도해의 조망이 빼어난 곳입니다
근교산이라 10시 10분경에 출발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머리인 청소년수련원에서 1km지점...
앞으로 정상까지 2.3km를 더 가야 합니다
와폭에 졸졸거리는 물줄기만 흐르고...
이 와폭포는 하나의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네요
여름철에 물놀이 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커다란 소사나무가 있는 돌무더기에 도착합니다
지금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된비알을 끙끙거리며 올라
석굴암에 도착합니다
금오산봉수대의 모습
아직은 절집같지 않는 석굴암
햐~ 명당입니다
이곳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모습이 일품입니다
언젠가 이곳에도 불사가 이루어져
그렇듯한 전각들이 세워지겠지요
석굴암에서 조금 오르면 왼쪽으로 미륵당이 있습니다
미륵당의 내부
또다시 정상까지 가파른 경사길...
저기 통신탑이 있는 곳이 정상입니다
아직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군사시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 군사시설도 없어지겠지요
지금의 첨단기술은 바다밑에서 하늘을 보는 세상인데...
잔은 비울수록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술이라도 좋고
사랑이라도 좋고
세월이라 해도 좋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비우고
조급함을 비우면...
여태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워진 그 여유속에
희망을 담고
사람을 담아...
삶을 보다 더 아름답게
여유롭게 할수 있을 겁니다
비워진 잔마다
채워질 것입니다
투명한 것을 담으면 투명해 지고
따뜻한 것을 담으면 따뜻해 질겁니다
금오산 정상석
오(鰲)자는 자라 오를 쓰는 군요
산의 형세가 금빛자라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산길...
잠깐 임도를 따르다가 왼쪽으로 내려서야 합니다
따뜻한 햇살이 사람을 기분 좋게합니다
하동 앞바다...
멀리 하동화력발전소가 보이네요
뒤돌아 본 정상모습
곳곳에 분재같은 소나무도...
마애불이 작은 석실에 있습니다
솜씨 좋은 석공이 그린것이 아니고
불심으로 그린 듯...
바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나무
얼마나 더 견딜수 있을련지...
대송리쪽으로 조망
전망좋은 너럭바위에서...
물 한모금
진바등(485m)에서 조망
그런데 진바등이란 무슨 뜻일까요...?
진바등에서 내려서면 긴 나무계단이 어어집니다
같이한 일행이 세어 보는 데...
무려 500계단이라 합니다
이 나무계단을 지나면 또 다시 돌계단이...
오전에 올랐던 삼거리 길을 다시 만나
왔던 길로 되짚어 하산합니다
산을 다 내려와 청소년수련원 맞은편에 있는
정기룡장군 사당을 둘러봅니다
정기룡 ( 1562~1622 )
- 조선 중기의 무신. 임진왜란 때 거창, 금산 싸움에서 전공을 세우고 상주성을 탈환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령에서 적장을 생포하고 성주·합천·초계·의령·경주·울산을 수복했다.
경북 상주를 중심으로 왜구들과 육지에서 60번 싸워 60번 승리한 정기룡 장군.
이때 이분의 나이는 불과 31세였고 전쟁이 끝난후 환갑이 넘은 권율장군과 이순신 장군,
원균에게만전쟁공신이 수여되고 정기룡 장군은 너무 어린나이와 정치적인 배제로 인해
6년후인 37세때 선조가 슬그머니 이순신 권율장군과 같은반열인 공신을 수여했으며
순국하신지 150여년이 지난후에 영조가 '충위공'이라는 시호를 내림.
조선왕조 실록에 80 여군데나 기록되어 있고 임란 당시 왜구들의 기록에 보면
왜적이 보는 앞에서 왜적의 배를 갈라 생간을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그대로 돌격해
7일동안 25개 왜군부대 9천에 가까운 군사를 고작 7백으로 휩쓸고 다녔다고 함
별명은 임진왜란의 조자룡.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는 말도 생겨남.
다만 정기룡은 이순신 못지 않은 활약을 육지에서 보여 당연히 선무공신이 되어야 마땅했으나
이미 사망한 원균이나 환갑을 넘긴 권율과는 달리 임진왜란이 종결된 시점에서
정기룡은 40살도 채 안된 상태였으므로
선조는 정기룡을 정치적으로 경계하기 위해 선무공신에 선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공이 혁혁한데도 역사에 높이 평가 받지 못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는 것은 당시의 정치상황때문이였고
선조의 올졸한 마음때문이였으리라
산행을 마치고 2시30분경에 버스는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수영 남천동에서 송년회가 있어 시간을 맞추어 가는데
곳곳에서 정체...정체...
좁은 국토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차들도 넘쳐나고
어휴~ 복잡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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